영국의 명문대학을 다니는 학생 5명 중 1명은 생활비 때문에 중퇴를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고의 명문대 중 하나로 꼽히는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 에든버러대학.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등이 포함된 영국의 엘리트 대학 24곳을 대표하는 러셀그룹학생연합의 최근 조사 결과다.
12일 러셀그룹학생연합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 대학에 다니는 학생 4분의 1은 정기적으로 음식이나 다른 필수품 없이 지내고 있다. 학생연합은 생활비 물가가 급격히 치솟으면서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을 제외한 대부분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 대상자의 절반 이상은 생활비 위기로 학업 성적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학비와 생활비에 대한 부담, 영양실조와 재정적 스트레스로 인한 집중력 저하 등의 문제를 겪고 있으며, 강의를 들어야 할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나서기도 했다.
조사를 진행한 연구진은 “긴급히 조처하지 않으면 앞으로 대학은 가장 특권층에게만 개방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러셀그룹의 최고경영자인 팀 브래드쇼 박사는 영국 정부가 학자금 대출 시스템의 결함을 해결하고 2020-2021년 이후 인플레이션에 맞춰 대출을 늘리는 등 긴급히 조처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정부가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유지 보조금을 재도입하는 것을 고려할 것과 2008년 이후 동결된 최대 대출 지원을 위한 가구 소득을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올해 1~2월 8,500명 이상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 자퇴를 고려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불리한 사람 중 10명 중 3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자퇴를 심각히 고려하는 학생들에는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고 혜택 받지 못하는 학생들과 장애 학생, 시간제 등록생이 포함됐다. 물가 부담은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유학생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연구를 이끈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정책 및 연구 관리자 대니 브래드포드 박사는 “대학 시스템이 가장 특권층에게만 열려 있다. 가구 소득이 7만5,000파운드 이상(1억1,890만원)인 학생들 사이에서만 중퇴를 고려한 숫자가 상당히 감소했다”고 말했다. 박사는 “학생들이 밖에 나가 커피를 마시거나 대외활동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극심한 수준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사에서 학생들은 심각한 불안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보고했다. 일부는 가족들이 생활비를 아끼고자 추운 겨울에도 집에서 난방을 켜지 않는다고 말했다.
브래드포드 박사는 “많은 학생이 자퇴할 위험이 있고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1학년 학생인 소피 부시 또한 생활비 때문에 역사와 과학 철학 수업을 그만두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생활비를 감당하고자 서빙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내년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현재 그는 불안과 스트레스로 크론병이 더 악화되었다고 토로했다.
에든버러에서 지식재산권법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핀란드 학생 에브게니아 글란치는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일주일에 25~30시간씩 소매업을 겸업하며 때로는 강의를 듣지 못한다. 그는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에 유학생으로서 삶이 훨씬 더 힘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제 영국 정부는 유학생들이 나가길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 교육부는 학생들이 중퇴를 고려하기 전 각종 지원을 강화하라고 말한다. 교육부 대변인은 “많은 학생이 생활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다.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돕기 위해 1,500만 파운드(238억원)를 추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번 학기 학생 프리미엄 기금을 2억 7,600만 파운드(4,379억원)로 늘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