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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 시작 1시간 미루자 결석·지각↓ 성적은↑

김성은 2023-02-23 00:00:00

세인트조지여학교
시애틀의 모든 공립학교는 고등학생들의 수업 시작 시간을 오전 8시 45분으로 옮겼다. 세인트조지여학교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9시로 정해진 등교 시간을 자율화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등교시간을 두고 찬반 의견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과거의 ‘0교시’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입장이다. 등교 시간은 학생은 물론 가정과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항인 만큼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고등학생의 등교 시간에 따라 수면시간은 물론 학업성취도도 달라졌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 17일 미국 교육매체 에듀토피아에 따르면, 시애틀의 루즈벨트 고등학교의 과학교사 트레이시 랜드보는 ”첫 수업이 7시 30분에 시작한다. 나는 좀비를 가르치고 있었다“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아침에 일찍 알어나 수업을 듣는 탓에 학생들 대부분은 졸음과 사투 중이었던 것이다.

2016년 시애틀의 모든 공립학교는 고등학생들의 수업 시작 시간을 오전 8시 45분으로 옮겼다. 이러한 변화는 청소년들의 수면 부족이 정신 건강, 경각심, 학업 성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하는 연구가 여러 차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소아과학회는 ”청소년들의 불충분한 수면은 학교 수업이 오전 8시 30분 이전에 시작되는 탓이 크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시애틀에 이어 덴버 메트로 지역의 몇몇 구역이 2017~2019년에 등교 시간을 늦췄고 캘리포니아는 올해 고등학교가 오전 8시 30분보다 일찍 수업을 시작하는 것을 금지하는 새로운 법을 시행했다. 뉴저지, 뉴욕, 매사추세츠도 비슷한 변화를 고려하고 있다.

등교 시간의 변화에 대해 학교 교사들은 어떻게 체감하고 있을까? 웨스트 시애틀 고등학교의 생물학 교사인 AJ 카차로프는 ”변경 즉시 학생들에게서 확연한 차이가 나타났다“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더 많이 잘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수업시간이 더 즐거워졌다. 인지능력이 향상된 것이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시애틀에서 근무하는 생물학 교사 카차로프와 과학 교사 랜드보는 수업 시작 시간이 지역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2018년 연구에 참여했다. 학생들은 80명씩 두 그룹으로 나뉘어 2016년과 2017년 2주에 걸쳐 수면과 기상 패턴을 측정하고 수면 일지와 정신건강과 관련된 설문지를 작성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수업 시작 시간이 늦춰진 이후 학생들의 수면 시간이 평균 34분 증가했고 성적이 평균 4.5% 향상됐다. 랜드보가 근무하는 학교는 등록된 학생의 약 90%가 경제적으로좋지 않다. 이 학교에서는 결석이 12%, 지각이 31% 감소했다.

이 연구 결과는 수업 시작이 늦춰지면 청소년의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향상시키고 학업 성취도를 높이며 약물 남용, 알코올 남용, 졸음 운전과 같은 파괴적인 행동을 감소시킨다는 이전 연구와 일치한다.

에듀토피아에 따르면,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수업 시간을 늦추는 정책은 인기가 없다. 2022년 전국학부모, 교사, 교직원을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다수의 학부모(44%)와 교사(36%)가 학교가 늦게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 만테카통합교육구의 클라크 버크 교육감은 “수업 시간을 변경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감은 “맞벌이 부모, 통근하는 직원들, 방과후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추가 고민거리를 가져왔다”라며 “지역사회와 교직원, 학생들 사이에 많은 조정이 필요하다.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변화를 주의 깊게 고민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워싱턴대학의 생물학 교수이자 2018년 연구의 공동 저자인 호라시오 이글레시아는 “학교의 우선순위가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것이라면, 학생들의 수면을 늘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이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변화를 이뤄내기 어렵고 특히 교사와 학부모를 설득하기는 더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등교 시간 변경으로 시애틀의 청소년들은 밤에 30분 이상 더 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글레시아 교수에 따르면, 사춘기에는 수면 리듬의 변화하면서 일찍 잠들기가 어렵다. 교수는 “잠자리에 일찍 눕더라도 자정 즈음에야 잠들 수 있다”라며 “오히려 아침 7시 30분에 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10세 아이에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13세 된 아이에게는 생물학적 수면리듬과 맞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도 수업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십 대는 회복 수면과 렘 수면을 모두 놓치게 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게재됐다. 회복 수면은 몸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면역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렘 수면은 사건을 통합하고 기억으로 저장하는 데 중요하다. 보고서는 “자연스럽게 밤 11시쯤 잠자리에 드는 10학년 학생이 학교에 가기 위해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한다면, 질 좋은 수면 시간을 잃어버리는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오전 7시 30분에 1교시가 시작한다면, 학생들은 늦어도 오전 6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이글레시아 교수는 “이는 어른에게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나서 오전 5시 30분까지 복잡한 정보를 처리할 준비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라고 강조했다.

수업 시간을 늦추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하루 수면시간은 5~6시간에서 7~8시간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 카차로프는 “1교시에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이전에는 너무 피곤하다, 과학에 소질이 없다고 말했던 아이들이다”라고 말했다.

콜로라도주 보더밸리 교육구의 롭 앤더슨 교육감은 수업 시작 시간을 바꾸기 위해 학교 이사회와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수업시간을 늦추는 것에 가장 크게 반대하는 이유가 과외 활동, 방과후 운동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학교 수업이 마친 뒤에 축구나 밴드 연습을 하는 경우 1교시가 늦게 시작되면서 축구 연습도 늦게 시작된다. 더 늦은 시간에 집에 도착해 숙제를 하고 저녁을 늦게 먹는다.

교사들은 퇴근이 늦어진다는 것에 경악했고 맞벌이 가정은 초등학생을 위한 방과 후 돌봄을 찾기 위해 시간을 조정해야 했다. 등교 시간과 출근 시간이 겹치면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학부모도 있고 버스 운전사 부족하거나 교통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앤더슨 교육감은 이러한 변화가 아이들의 학업과 수면, 신체건강, 정신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을 전달했다. 수업은 늦게 시작하지만, 아이를 일찍 데려다줘야 하는 학부모를 고려해 학교는 오전 7시 30분에 동일하게 문을 열었다.

콜로라도 체리크릭교육구는 국립유대인보건소와 함께 수업 시작 시간이 변경됨에 따른 변화를 수집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 고등학생의 평균 수면시간이 45분 늘어났으며, 학생들의 과외활동 참여에는 최소한의 영향만 미쳤다.

수면학회에 따르면 수면 문제와 두뇌발달은 연관성이 깊다. 수면은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모두에 중요한 요소다. 십 대 청소년에게 가장 이상적인 수면 시간은 8시간 30분이지만 이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보건학회지》에 실린 ‘청소년 스트레스, 수면의 질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의 평일 평균 수면시간은 7시 32분이다. 청소년의 75.3%가 적정 수면보다 적게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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