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학교가 장기간 폐쇄되면서 청소년의 정신건강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미국에서 제기됐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일제히 대책 마련을 호소하는 가운데 미 하원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회복법을 통과시키는 등 미국 전체가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 분주한 모양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팬데믹으로 자가격리 혹은 재택학습을 받은 미국의 고등학생 중 37%가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을 포함한 지속적인 정신건질환에 시달렸다고 보고했다. 범위를 6세에서 17세 사이로 넓혀도 거의 12%, 비대면학습을 장기간 이어온 어린이 6명 중 1명이 정신건강에 이상을 호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CDC는 올해 초, 37%의 고등학생들이 팬데믹 기간 동안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을 포함한 지속적인 정신건강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고립과 격리가 성장기 고등학생들에게는 더 큰 정신적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초중등 공교육의 지원 및 관리를 담당하는 DESE(Department of Elementary and Secondary Education)의 크리스텐 맥킨논 담당관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거나, 스포츠에 참여할 수 없거나, 선생님들과 얼굴을 맞대고 교류할 수 없다는 점은 17세 미만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정신질환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전문인력 수급의 부족과 예산 등의 이유로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는 점점 더 커다란 위기가 되는 상황"이라며 "슬픔이나 절망의 지속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학생들의 수가 지난 10년 동안 40% 증가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COVID-19 팬데믹 등이 지속적으로 악화해 온 청소년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무게추를 더 싣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당장 미국 내 학교에 더 많은 심리상담사를 배치하고 학생들에 대한 정신건강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길-몬테규 제단의 다이엔 엘리스 이사장은 "2020-2021년의 경우 학교에 상주하는 심리교육전문가가 학생 1162명당 단 1명뿐"이라며 "이는 전국학교심리학자협회의 권고 수준인 500명 중 1명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예산 배정, 재단과 기업의 기부, 모금활동을 포함한 광범위한 재원 마련을 바탕으로 교사 코칭, 전문 정신 건강 서비스, 지역사회 기반 파트너십 등 다각도의 청소년 정신건강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학생뿐 아니라 그 가족들의 심리상담및 정신건강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마련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 하원도 대응에 나섰다. 하원은 최근 초당적 지지를 바탕으로 정부가 청소년 정신건강 회복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신건강과 웰빙 희망 회복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모든 연령의 젊은이들 - 이미 대학에 진학한 경우를 포함한 - 청소년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긴급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이처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촉발된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는 미국에서만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EU의 지원으로 올해 초 진행된 조사에서는 과거 10-20%대였던 아동 정신질환 발병자는 코로나19 락다운 이후 20-25%대로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영국 왕립학회에 게재된 '코로나19 대유행이 청소년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자연 실험(The impact of the COVID-19 pandemic on adolescent mental health: a natural experiment)' 연구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우울증을 겪는 청소년이 6%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조사에 참여한 브레멘 대학 심리학과의 니나 하인리히스 박사는 "해당 연령대에서 나타나는 사춘기, 반항기 등 성인 세대와의 전통적인 갈등으로 인해 자칫 코로나19로 악화한 정신건강 문제가 가려질 우려가 있다"며 "어른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이에 어느 새 정신질환의 고통에 시달리는 하나의 '세대'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작년 중순 18세 미만 청소년 5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청소년의 17.5%는 중등도 이상인 불안 위험군이나 우울 우험군 중 한가지 이상에 해당됐으며 그 중 10%가량은 최근 2주 이내 자해 등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충동을 느꼈다고 대답해 충격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