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채널

[아이이뉴스의 제언] 책읽기 '의무'로 만드는 수행평가, 독서 여가활동으로 남겨둬야

김성은 2023-06-23 00:00:00

의무로 하는 독서 진정한 책읽기 즐거움 못 느끼게 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독서기록은 수학 문제를 풀듯이 '숙제'로 인식되며,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는 ‘보여주기 위한 도구’, ‘대학 입학을 위한 수행평가’의 일환으로 자리 잡는다. 토론토공공도서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독서기록은 수학 문제를 풀듯이 '숙제'로 인식되며,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는 ‘보여주기 위한 도구’, ‘대학 입학을 위한 수행평가’의 일환으로 자리 잡는다. 토론토공공도서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등장하는 첫 숙제가 바로 독서기록이다. 일주일에 1~2회 정도 독서기록을 내야 한다. 이 첫 숙제는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시작해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간의 학업 생활을 쫓아다닌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독서기록은 수학 문제를 풀듯이 '숙제'로 인식되며,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는 ‘보여주기 위한 도구’, ‘대학 입학을 위한 수행평가’의 일환으로 자리 잡는다.

정해진 분량과 양식

독서에 대한 부정적 인식 유발

혼자 읽는 책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독서기록은 억지로 해야 하는 숙제, 검사받아야 하는 숙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잘 포장해야 하는 숙제가 된다. 토론토공공도서관
혼자 읽는 책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독서기록은 억지로 해야 하는 숙제, 검사받아야 하는 숙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잘 포장해야 하는 숙제가 된다. 토론토공공도서관

8세는 이제 한글을 떼고 스스로 책을 읽어나갈 수 있는 시기다. 혼자 읽는 책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독서기록은 억지로 해야 하는 숙제, 검사받아야 하는 숙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잘 포장해야 하는 숙제가 된다. ‘문해력 위기’ 시대에 이는 아이들에게 독서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고, 반감만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학교에서는 독서기록을 정해진 양식 중에 골라서 정해진 분량에 맞춰 제출하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의무와 부담감에 학생들은 독서와 글쓰기, 두 가지 모두를 싫어하게 된다.

독서에 성공하면 어휘력과 이해력이 향상되어 모든 학업 영역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역사 및 과학과 같은 다른 영역에서도 뒤처질 수 있다. 올어바웃러닝프레스
독서에 성공하면 어휘력과 이해력이 향상되어 모든 학업 영역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역사 및 과학과 같은 다른 영역에서도 뒤처질 수 있다. 올어바웃러닝프레스

물론 독서기록이 어린 학생들의 읽기와 글쓰기 실력,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강압적으로 지시하거나 하지 않았을 때 불이익을 주면 당연히 반발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입시 위한 독서기록

흥미 아닌 생활기록부 작성 위한 책 선택

책의 깊은 맛과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만들고, 독서라는 활동을 학생들에게 경쟁과 선발의 대상으로 만든다. 토론토공공도서관 
책의 깊은 맛과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만들고, 독서라는 활동을 학생들에게 경쟁과 선발의 대상으로 만든다. 토론토공공도서관 

전국 중·고등학교는 학생들의 모든 교과 성적을 산출할 때 교육부 훈령과 시·도교육청의 지침에 따라 지필평가와 수행평가 점수를 합산해 처리한다. 학교는 수행평가 결과를 교과성적의 40%를 반영하도록 하는 학업성적관리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학생들은 책을 선택하는 것조차도 대학 입시를 위해 자신을 포장하는 작업이 되어버리고, 생활기록부에 기재하기 위한 ‘멋진 책’을 선택한다. 독서기록 리스트로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이라는 점을 어필하고 생활기록부에 들어가는 장래희망과 부합되는 독서 활동을 즐겼다고 주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책의 깊은 맛과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만들고, 독서라는 활동을 학생들에게 경쟁과 선발의 대상으로 만든다.

"독서기록 수행평가는

공부하기 싫을 때, 따분할 때 책 한 권 골라들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까지 없앤다.

수행평가에 반영되지 않는 일상의 독서는 아이들에게 의미가 없다"

이은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 활동가는 단체 홈페이지를 통해 독서 이력을 기록하고 입시에 활용하는 것은 인권 문제라고 주장을 펼쳤다. 그는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 활동이 아닌 독서가 기록의 대상이 되고, 대학 입시에 활용된다. 학교 교육과정으로 편성된 과목도 아니고 교내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활동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은 읽는 책과 각종 활동까지 대학 눈치를 보며 포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많은 수행평가, 학생 부담 가중해 사교육비로 직결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킬러문항을 배제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교육계와 학부모, 학생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다. 교육부는 교과과정 학습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로 출제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독서 흥미도는 문해력과 긍정적 관계를 보여준다. 독서에 관심이 많은 학생일수록 높은 수준의 읽기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심리학
독서 흥미도는 문해력과 긍정적 관계를 보여준다. 독서에 관심이 많은 학생일수록 높은 수준의 읽기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심리학

하지만 정작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사교육비는 내신 준비와 수행평가 때문에 더 많이 지출된다는 입장이다. 수행평가는 이미 실효성은 없고 학생과 교사에게 부담만 주고 부작용만 있다는 것에 대부분 학생과 교사들은 공감하고 있다.

독서기록 수행평가는 공부하기 싫을 때, 따분할 때 책 한 권 골라들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까지 없앤다. 수행평가에 반영되지 않는 일상의 독서는 별 의미가 없다. 내신에 반영되는 독서기록은 나의 생각을 담는 것이 아닌,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 잘 포장된다.

[아이이뉴스의 제언] 책읽기 '의무'로 만드는 수행평가, 독서 여가활동으로 남겨둬야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려면, 숙제가 아닌, 입시가 아닌 독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물론 아이들이 일 년에 읽는 독서 권수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보여주기 위해,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한 독서가 진정한 책 읽기일까? 일시적인 통계에 대한 두려움은 버리고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책 읽기가 왜 즐거운지 답을 찾는 것에서 다시 출발하자.

아이가 자유롭게 책 선택하고 여유롭게 읽을 수 있어야 

우선 책 선택은 학생에게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릴 때부터 도서관 또는 서점에서 마음껏 책을 들춰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다.

둘째, 숙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숙제로 주어진 독서기록보다는 아이들이 직접 선택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더 의미 있을 수 있다. 평가 없이 생각과 감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제하는 대신,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재미있는 활동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그런 뒤에 스스로 책을 선택하고 읽는 것을 즐길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개인 수준에서 읽기 문해력의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는 읽기 메타인지와 독서 흥미였다. 교육심리학 
개인 수준에서 읽기 문해력의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는 읽기 메타인지와 독서 흥미였다. 교육심리학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책을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들은 관심 있는 주제나 스타일의 책을 찾아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다양한 과학 책을 소개하고, 판타지나 모험을 좋아한다면, 그에 맞는 책을 소개할 수 있다. 책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아이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깊게 파고들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독서 기록이 중요한 평가 수단일 수는 있지만, 독서의 본질인 즐거움을 덮어버린다면 그 의미는 상실된다. 독서를 숙제나 의무가 아닌 즐거운 활동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결국 아이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고, 지속적으로 책을 읽는 습관을 형성하는 데에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Copyright ⓒ 아이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동권리교육 뉴스